정부가 DSR을 활용해 신용대출을 조이겠다고 나서자 예상대로 시행 전 대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마이너스 통장 개설도 2배 가까이 늘었다. 5대 은행의 신규 마이너스 통장 개설 수는 12일 1931개에서 18일 4082개로 뛰었다. 새 규제가 시행되면 마이너스 통장의 한도도 신용대출 총액에 합산되기 때문에 미리 받아두려는 사람이 몰렸다.
시중은행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KB국민은행은 23일부터 신용대출 심사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우선 신용대출이 1억원 초과면 차주(대출자)의 소득과 무관하게 ‘DSR 40% 이내’ 규제를 적용한다. DSR은 차주가 대출을 상환할 수 있는 소득 능력을 갖췄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다. 가계대출(주택·신용대출 등)로 연간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DSR이 40%면 소득이 1억원일 때 연간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4000만원 이내여야 한다.
우리은행은 새 규제 조기 시행을 저울질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관련 전산 시스템 개발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일정을 단축해 빨리 시행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내부 공문도 이미 배포된 상태”라고 밝혔다. NH농협은행 역시 대출 한도와 우대금리를 줄이는 방법으로 신용대출 억제에 나섰다.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대출자들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대출은 필요할 때 받아야 하는데 미리 받아두게 만드는 이상한 규제란 반응이 많다. 직장인 이재준(38) 씨는 지난주 9000만원가량 신용대출을 받아뒀다. 내년쯤 집을 살 계획인데 그땐 신용대출을 활용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길 듣고서다. 이씨는 “주택담보대출이 적게 나와 신용대출로 메우는 건데 대출을 미리 받은 셈이니 속상하다”며 “투기가 아니고 실제 집이 필요해서 사는 데 이렇게까지 막는 건 심하다”고 말했다.
고소득·고신용자의 대출을 제한하는 게 금융시장 논리에 역행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통상 신용도가 높고 상환능력이 큰 차주가 대출을 더 많이 받는다. 고소득자 대출로 부실이 생긴 것도 아닌데 이런 규제를 적용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계대출 관리를 위해서는 차주 단위의 DSR 적용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다만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전면적으로 빡빡하게 적용하기는 어려우므로 한 발짝씩 시행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시뮬레이션 검토 결과 고소득자의 고액 신용대출부터 적용하는 방안이 그나마 부작용이 적었다는 설명이다.
금융위의 판단엔 고소득자의 신용대출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깔렸다. 그런데 정말 고소득·고신용자가 받은 신용대출이 주택시장으로 흘러가 가격 불안정으로 이어졌느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계층의 늘어난 신용대출이 주택시장으로 언제 얼마나 흘러갔는지 검증이 있었는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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