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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경제 3법 1일1법 파고들기재계, 투기자본 위험성 내세우며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반대하지만
주주는 ‘기업 가치’ 잣대로 판단
엘리엇 공격에 지배구조 개편 무산?
현대차 총수 일가 위한 개편안
2018년 엘리엇 반대에 주주 호응
“시장의 선택 따른 바람직한 철회”
‘헤지펀드 위협론’의 허상
엘리엇, 추천 사외이사 지지 못얻어
2019년 현대차 주총에서 ‘쓴맛’
한진 분쟁, 3자연합 이사 선임 실패
소수주주의 권한 확대와 지배주주에 대한 견제, 소비자 보호 강화를 뼈대로 한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공정경제 3법과 집단소송법 개정·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당장 여당 내에선 ‘3%룰’ 완화 방안을 물밑 검토 중이다. 재계 등은 국내 기업이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당 법안을 둘러싼 쟁점을 6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첫회는 지배주주에 도전하는 소수주주 모두가 ‘국외 투기자본’인지, 그 위협은 어느 정도인지를 살폈다. 2018년 5월, 현대자동차그룹은 두달 전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스스로 철회했다. 개편안 표결이 이뤄지는 주주총회를 일주일쯤 앞둔 시점이었다.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지분을 각각 2% 남짓 보유하고 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반대 선언을 하는 등 표결 전망이 밝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 개편안 반대 주장을 편 게 엘리엇만은 아니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 아이에스에스(ISS)와 국민연금의 의결권 자문사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도 엘리엇 편에 섰다. 이런 소수주주들의 ‘반란’은
현대차그룹 개편안이 지배주주인 총수 일가에 더 유리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분할 법인 간 합병 비율(1 대 0.61)이 문제였다. 정몽구·정의선 등 총수 일가 지분이 많은 글로비스가 합병 회사의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가 모비스 주주는 상대적 손해를 보는 구도였다는 얘기다.
■ 재계 “투기자본에 안방 내준다” 반발 지난 8월 감사위원을 사외이사와 따로 뽑고 선출 시 지배주주와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로 제한(이하 각각 감사위원 분리선출·3%룰)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뒤 국내 주력 기업이 외국 투기자본의 공격에 흔들리게 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재계와 정치권 일부에서 잦아들지 않는다. 총수 일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감사위원을 두려다 투기자본에 안방을 내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때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 중 하나가 2018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무산 에피소드다. 주요 산업별 협회의 연합모임인
한국산업연합포럼(KIAF)은 2019년에도 이어진 엘리엇의 현대차그룹 경영 개입 사례를 토대로 국내 15대 주요 상장사를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상법이 개정될 경우 13개사에서 헤지펀드 추천 인사가 감사위원 겸 등기이사로 선임될 수 있다는 구체적 ‘숫자’까지 내놓으며 여론몰이 중이다. 이런 우려엔 얼마나 현실 가능성과 타당성이 있을까. 우선 2018년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 무산에 대한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김우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개편안은 엘리엇뿐 아니라 국민연금 등 대부분의 주주가 반대하지 않았나. 시장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아 회사가 자발적으로 개편안을 철회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개편안 철회는 현대차의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단기 이익에 충실한 헤지펀드의 무차별 공격에 국내 주력 기업이 백기를 들었다는 재계의 ‘서사’ 자체를 수긍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사실 당시 개편안 철회 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현 회장) 명의의 입장문도 김 교수의 진단과 거리가 멀지 않다. “주주분들과 투자자 및 시장에서 제기한 다양한 견해와 고언을 겸허한 마음으로 검토해 충분히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도 절감했습니다.”
■ 한진 경영권 분쟁…소수주주 신뢰 중요성 보여줘 이듬해인 2019년 현대차 주총도 ‘헤지펀드 위협론’의 허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시는 한해 전 지배구조 개편안 무산의 주역인 엘리엇이 사외이사 후보 3명을 추천하는 등 회사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진출을 노리고 있던 시점이다. 이번엔 시장의 평가가 엇갈렸다. 아이에스에스는 후보 3명 중 2명만 찬성 권고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모두 반대 권고를 했다. 실제 그해 주총에선 세 후보 모두 채 20%도 지지를 받지 못해 선임되지 못했다.
이번엔 엘리엇이 시장의 지지를 받지 못해 패퇴한 모양새가 된 셈이다. 이후 엘리엇은 보유 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현대차그룹 공격을 중단했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경제개혁연구소장)는 “누구든 좋은 안을 내놓으면 찬성표를 받는 것이고 좋지 않은 안을 내놓으면 부결이 되는 것이다. 3%룰 도입 등을 놓고 기업들이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결국 나머지 주주들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도 결국 소수주주들의 신뢰와 지지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례다. 지난 3월 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지배주주 쪽과 대결하던 ‘3자 연합’이 추천한 이사 선임이 모두 무산되고
조 회장이 이사로 재선임됐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인 케이씨지아이(KCGI), 반도건설이 손잡은 ‘3자 연합’은 전문 경영인 도입과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한진칼 주주들을 설득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심지어 이들의 지분은 33.45%로 조 회장 등 지배주주 지분보다 겨우 1.47%포인트 적었지만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지배주주와 3자 연합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은 기관투자자 등 소수주주들이 코로나19로 항공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기존 경영진인 조 회장에게 기회를 주는 게 위기 타개에 더 유리하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 “멀쩡한 기업한텐 그런 일 본 적 없다” 이는 감사위원 분리선출과 3%룰이 도입될 경우 일정 규모 이상의 지분을 취득한 헤지펀드라도 소수주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감사위원 후보를 내세운다면 선임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걸 방증하는 사례다. 재계가 줄곧 해당 규정이 도입되면 헤지펀드의 추천으로 기업 기밀을 빼내는 ‘스파이’ 노릇을 하는 감사위원이 선임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것과는 대비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헤지펀드가 이사나 감사위원을 추천하더라도 소수주주들이 해당 후보가 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본다면 해당 추천에 동의할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의결권 행사 자문기관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헤지펀드가 감사위원 추천 등 주주제안을 하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들어간다. 멀쩡하게 잘하고 있는 기업에 헤지펀드가 왜 돈을 들여 감사위원을 선임하려 하겠느냐”며 “자본시장에 33년 있었지만 멀쩡한 기업한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송채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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