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시황 꺾여도 살아남을 체력 갖춰”
“3년 뒤 선복 공급 과잉 만들 수도”…우려
3월 22일 부산 신항에 첫 취항한 1만6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 1호선 ‘HMM Nuri(에이치엠엠 누리)호’가 국내 화물을 싣고 첫 출항했다. /사진 제공=HMM
불과 몇 년전을 생각하면, HMM의 이러한 주가 상승은 '격세지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사태 때였습니다. 시장에서는 한진 보다 더 작은 규모의 현대상선이 살아남았다며 당시 정권의 ‘비선실세’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왔습니다. 한 마디로 '망해야 하는 회사가 안 망하는 게 이상하다'는 식이었죠. 남아 있는 게 HMM이니 정부 주도의 ‘해운산업 재건’이 한창일 때는 지원을 독차지한다는 눈총까지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작년 1분기까지 흑자전환에는 계속 실패합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건 작년부터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해운산업의 뜻하지 않은 변화를 부른 겁니다. 세계적인 감염병의 대유행으로 각국 정부는 봉쇄조치에 나서기 시작했고, 글로벌 해운업계는 물동량 감소를 우려해 선복(컨테이너를 실을 선박 내 공간) 줄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일까요. 물동량은 업계의 예상처럼 줄지 않았고, 해상운임은 치솟았습니다. 이러한 수혜는 HMM이 고스란히 받았습니다. 경쟁 선사들이 선복을 줄이는 동안 정부 지원으로 발주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잇따라 인도받은 탓이었습니다. HMM의 활약이 계속 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분분합니다. 조선업 수주 호황을 맞으면서 선복 공급이 많아지고, 운임이 다시 고꾸라질 수 있어서입니다. 앞서 2000년대 전반에 걸쳐 우리 조선업계에 발주된 선박들이 인도된 뒤인 2011년부터 당시 현대상선은 장기적자의 늪에 빠진 바 있습니다. 이번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는 HMM입니다.
비단 이러한 주가는 HMM 뿐만이 아닙니다. 글로벌 해운기업들의 주가가 모두 급등했습니다. 지난 5월27일 종가를 2019년 종가와 비교하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사인 덴마크 머스크(A주)는 73.24%가, 대만의 에버그린은 607.26%가 각각 올랐습니다.
해운사들의 실적 개선은 작년 하반기 이후 해상 컨테이너 운임 급등에서 비롯됐습니다. 여러 항로들의 컨테이너 운임을 지수화한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라는 게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시작됐던 작년 4월24일 818.16로 저점이었습니다. 이 지수가 이달 21일 3432.50입니다. 1년 만에 4배 넘게 오른 겁니다. 2009년 SCFI가 만들어진 뒤 1500을 넘은 적은 2012년 5월4일(1501.46)이 유일했습니다.
글로벌 해운업 치킨게임이 한창이던 2015년 3월 이후부터 2019년까지는 아예 1000을 넘긴 적도 없었던 수치였습니다. 해운업 경기가 곤두박질쳤던 2016년 3월18일에는 SCFI가 400.43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운임지수만 봐도 수년동안 적자에서 급격히 벗어난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선박 크기가 커지면 컨테이너당 운송 비용이 줄어 해운사의 수익성이 개선됩니다. 무작정 선박 크기를 키울 수 없습니다. 미주 항로와 유럽 항로를 오가려면 각각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하는데, 각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최대 크기가 1만6000TEU급과 2만4000TEU급입니다. 예전에는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선박 크기가 더 작았지만, 운하의 확장공사가 이뤄진 덕에 선박 크기를 키울 수 있게 됐습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 호가 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코로나19 확산 사태로 생필품의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지만, 물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통업체의 매대가 비는 일도 있었다”며 “이로 인해 과거 재고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던 기업들이 안전 재고를 확보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작년 하반기부터 물동량이 오히려 늘어났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요는 예상보다 줄지 않은 와중에 공급은 타이트해집니다. 수에즈운하에서의 선박 좌초 사고, 항만 셧다운으로 인한 컨테이너박스 적체 현상 등까지 이어진 겁니다. 선박의 운항 시간이 길어지면, 공급되는 선복이 줄어드는 효과를 내게 됩니다. 이러니 운임이 치솟을 수 밖에 없었던 겁니다. 시장의 기본적인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서죠.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확보해나가면서 HMM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HMM은 작년 초 글로벌 3대 해운동맹인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했습니다. 선사들은 모든 항구에서 영업해 선복을 채우기 힘들기 때문에 해운동맹을 구성해 영업력과 선복을 공유합니다. 디얼라이언스에 가입하기 전 HMM의 위상은 이보다 약했습니다. 세계 최대 해운동맹인 2M(머스크+MSC)와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영업했습니다. 당시에는 2M의 정회원도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활동에 제약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한진해운의 미주노선을 인수한 삼라마이더스(SM)그룹의 SM상선이 현대상선의 뒤를 이어 2M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한진해운. 파산 전까지만해도 어떤 회사인지는 아실 겁니다. 국내 1위이자 세계 7위 규모의 해운사였습니다. 해운불황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파산했습니다. 당시 정부는 한진그룹과 한진해운 경영권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 지원을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최근 해운산업의 호황을 보면서 업계 안팎에서 한진해운의 파산이 가장 뼈아픈 대목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입니다.
40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사라진 한진해운. / 자료=한경DB
한종길 교수 또한 “HMM이 현재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이 배경에는 수조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당시 한진해운을 살렸으면 수천억원 수준의 지원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제 시장과 투자자들의 관심은 한 가지입니다. 향후 장기적으로도 HMM이 순항할 수 있을까입니다. 현재의 해운 호황 국면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제각각입니다. 일단 HMM의 체질이 현대상선 때와는 다르기에 해운업황이 악화돼도 살아남을 자생력은 갖췄다는 게 평가가 많습니다.
2016년 한국 해운업체들이 무너진 건 해운 경기가 좋은 시절에 높은 가격으로 배를 빌렸다(용선)가 해운 경기가 꺾이면서 용선료를 감당하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현대상선이 마지막으로 흑자를 낸 2010년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보유한 선복 중 각각 78.3%와 72.9%가 용선 선박의 공간이었습니다. 당시 글로벌 10위권 안에 있던 선사들 중 용선비율이 70% 이상인 회사는 한진해운이 유일했습니다.
HMM은 해운산업 재건 과정에서 선주들과의 용선료 조정 협상, 선박 반납 등을 통해 고가 용선 선박을 상당 부분 정리했습니다. 최근 들어 인도받고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들의 선복 비중은 전체의 절반에 육박합니다.
컨테이너박스의 적체 현상과 수에즈 운하 선박 좌초 사고의 여파로 물류 흐름이 꼬인 여파가 내년까지는 이어질 전망도 긍정적 전망에 힘을 보탭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도 높은 해상 운임이 조기에 안정화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뉴노멀에 진입하면서 해운업 경기는 상당기간 부진했고 글로벌 선사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경기 예측 모델을 도입하면서 보수적인 경영 전략을 취해왔다”며 “한번 상승한 운임은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013년 이후 1만2000TEU급 이상 규모의 컨테이너선 발주 추이. 단위는 CGT. /자료=클락슨리서치
중장기적으로 최근 조선업계의 수주 호황이 해운업계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있습니다. 조선사들이 수주한 선박이 완성돼 발주사 측에 인도되면 선복의 공급이 크게 증가하고, 이는 운임 하락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글로벌 조선·해운 분석업체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4월 발주된 1만2000TEU급 이상의 컨테이너선은 636만664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선박의 건조 난이도를 고려한 무게 단위)로, 작년 연간 발주량 307만1334CGT의 2배 이상입니다.
이 밖에 HMM의 민영화 이슈도 전망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해운산업은 짧은 호황과 긴 불황으로 구성된 사이클 전체가 20년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잘 운영해나갈 국내 민영기업이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는 겁니다. 때문에 HMM의 민영화에는 시간이 걸리고, 공기업화하는 게 낫다는 제안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어떤 전망을 내놓건 HMM의 이번 호황이 '반짝'이 아니기를 바라는 건 한마음입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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