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톡] 아빠에게 실수로 잘못 건 전화 한 통](https://image.chosun.com/sitedata/image/202007/12/2020071201840_0.jpg)
그런데 이따금, 이놈의 헤드폰이 말썽을 부린다. 무르팍 어딘가를 툭 치면 반사적으로 다리가 휙 올라가듯 헤드폰 어딘가를 톡 치면 아무에게나 전화가 획 걸려버리는 식이다. 그 대상이 가까운 친구라면 다행이지만 고릿적에 헤어진 남자 친구라든지 원수지간인 옛 직장 동료라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얼마 전에도 헤드폰을 머리에 이고 길을 걷는데 귓바퀴 언저리가 가려워 벅벅 긁다가 내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신호가 갔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꺼내 든 나는 화면에 떠오른 '아빠'라는 두 글자를 보고 기절초풍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제 아버지와 통화하는 게 무어 별일인가 싶겠지만, 평소 안부 전화 한 통 하지 않는 나에게 무자식이 상팔자라며 죽는소리하는 아빠를 향해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만 알라며 뻗대던 내가 아닌가. 통화 종료 버튼을 거듭 눌러 댔으나 어쩐 일인지 먹통이었다.
"여보세요."

엄마로부터 전해 들은 후일담이다. 그날 저녁, 적막하기만 했던 두 노인의 식탁 위에 오손도손 이야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오늘 낮에 막내가 전화를 했네, 어머나 그 애가 웬일이래, 내 생일이라 전화했다는데, 세상에 기특하기도 해라 아빠 챙길 줄도 알고, 그러게나 말이야, 하는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느라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아버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막내딸 자랑을 떠벌리고 있을 테지. 헤드폰을 꾹 눌러쓰고서 거리를 걷는 발걸음이 전에 없이 무겁다. 괜한 생각을 떨쳐 버리려 머리를 연신 쓸어 넘겨 본다. 그러다 헤드폰 어딘가에 손이 잘못 스쳤는지 나더러 뜬금없이 '음성 명령'을 내리란다. 이런 요물 같은 헤드폰을 다 봤나.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더듬더듬 말했다. "시리야, 아빠한테 전화 걸어 줘."
July 13, 2020 at 01:10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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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톡] 아빠에게 실수로 잘못 건 전화 한 통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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