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쓰던 휴대전화 번호를 최근에 갑자기 바꿨더라고. 의심을 살 수도 있는데, 왜 그랬는지….” 지난 23일 전북 전주에서 만난 50대 A씨는 전주발 ‘원정 투기’ 의혹과 관련해 이런 얘기를 꺼냈다.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는 사람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직원의 아내라고 했다.
A씨는 “(알고 지내던 LH 직원 아내의) 전화번호가 바뀐 지 5일 정도 됐다. 앞번호가 010으로 바뀔 때도 뒷번호를 안 바꿀 만큼 전화번호에 애착이 있었는데 이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번호를 바꾼 것만으로도 (수사기관에선) 의심하고 들 텐데 왜 바꿨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A씨는 그 LH 직원 측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될지 모를 상황에서 이미 증거인멸에 나선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국민일보 취재팀은 지난 23일과 25일 두 차례 전주를 찾았다. LH 전북본부가 있는 전주는 LH 전·현 직원 및 가족이 대거 연루된 원정 투기 의혹의 중심지다. 전주 시민들은 투기 의혹에 지역이 거론되는 상황을 무척 불편해했다. 그러면서도 관련 움직임에 이렇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취재팀이 휴대전화를 바꿨다는 LH 직원 아내의 신원을 묻자 A씨는 답하지 않았다. 다만 “(경기도 광명·시흥 원정 투기) 의혹과 관련된 인물일 가능성은 100%라고 본다. 그런 고급 정보를 접할 사람들의 범위가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전주시민회 이승목 활동가는 “압수수색이 시작되니까 LH 직원들이 증거를 없애려는 것 같다. 경찰 수사가 너무 늦은 건지 모른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취재팀이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 일대에서 2017년 1월부터 2021년 2월까지 거래된 토지의 등기부등본 340여통을 분석하고 관련 인물을 취재한 결과, 전주발 광명·시흥 원정 투기 의혹에 연루된 LH 전·현 직원은 모두 10명으로 현직 6명, 전직 4명이었다. 전북지역 의사 6명을 포함한 의사 가족 9명이 이곳에서 땅을 사들인 사실도 확인됐다. (국민일보 3월 22일 1·2면, 25일 5면 참조)
이들의 거주지는 전주의 특정 아파트에 몰려 있었다. 한 동에만 6명의 의사 가족이 있는 △△아파트는 전주에서도 전문직, 특히 의사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로 유명한 곳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 이모씨는 “집은 연식이 오래됐는데, 전문직 종사자 등 돈 좀 있는 분들이 산다”며 “특히 의사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에서 오래 거주한 B(32)씨는 “단지 내에 의사 모임이 있다고 들었다”며 “전주가 좁다 보니 특정 의대 출신 중심으로 의사들이 똘똘 뭉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입은 계속 생기는데 전주 아파트값이 오르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외제차 몇 대씩 사도 돈이 남는다. 서로 투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수도권 부동산 투자를 많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은 전주 지역이 투기 의혹에 연루된 데 대해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아파트 상가에서 자영업을 하는 임모(57)씨는 “지역 전체가 매도될 수도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며 “(땅 투기가 밝혀지면) 환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본인과 가족 명의로 경기도 광명 노온사동 땅을 사들인 LH 현직 직원 두 명이 살고 있다. 전주에서 만난 강모(65)씨는 “LH(전북본부)가 있으니 (정보가) 직원들을 통해 이웃에게도 번졌을 것 같다. 그들만의 리그가 암암리에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정 투기 의혹이 제기된 이후 시민단체에 이런저런 제보와 문의도 많아졌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박우성 활동가는 “전주 연관 기사들이 보도되니 ‘왜 우리 지역이 이렇게 됐나’ 한탄하는 전화가 최근 많이 걸려왔다”며 “다만 아직까지 증거가 확보된 구체적 제보는 없었다”고 말했다.
전주=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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