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송유관 회사 해킹당해 미 동부 주유소들 차량 행렬
기름값 7년만에 최대치 치솟고 주유소 상당수 품절 사태
“남들이 하니 나도…코로나 화장실 휴지 사재기 생각나”
바이든 대통령 “24시간 내로 좋은 소식 있을 것”
미국 최대 송유관 회사가 해킹 공격을 당해 미 동남부에 유류 공급에 차질이 생긴 가운데, 12일(현지시각) 버지니아주 맥클린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를 넣으려는 차량들이 줄을 서 있다. 황준범 기자
미국 최대 송유관을 운영하는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에 대한 해킹 공격으로 직격탄을 맞은 미 동남부 지역이 주유소마다 기름 사재기 행렬로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휘발유 가격은 7년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12일(현지시각) 오후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주 맥클린 시내 사거리는 주유소로 들어가려는 차량들로 교통 혼잡이 벌어질 정도였다. 사거리에 3개의 주유소가 있는데, 이 가운데 한 곳은 이미 이날 오전 휘발유가 동이 났다. 주유소 점원은 모르고 들어오는 차량들에 “디젤만 남았다”고 안내했다. 이 주유소의 일반 휘발유는 전날 갤런당 2.86달러였지만, 하루 사이 2.95달러로 오른 상태에서 그마저 소진됐다. 이곳에 들어온 차량들은 바로 옆에 붙은 또 다른 주유소로 방향을 돌렸다. 길지는 않지만 역주행 차량 행렬이 허용됐다. 이 주유소로 들어가는 3곳의 진입로마다 차량이 줄을 이었다. 큰길 쪽으로는 약 50m 전방부터 대기줄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 주유소마저 오후 5시 현재 전체 12개의 주유구 중에 3개만 기름을 공급하고 있었다. 줄을 서 기다리던 60대 백인 남성은 <한겨레>에 “이런 일은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오랜만에 겪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람들이 이러지 않아도 되는데 다들 이러고 있다. 정상이 아닌 걸 알지만 나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모두가 사재기를 하지 않으면 가격이 급상승하거나 긴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데, 공포 심리가 전체를 동요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송유관 사태와 관련해 “24시간 내에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 남성은 “사태가 그보다 더 오래갈 것”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주는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오는 송유관의 끝부분에 있기 때문에 복구에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얘기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휘발유를 채워넣을 필요가 없다’며 사재기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지만, 현장에선 통하지 않고 있다. 불안이 불안을 키우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주유소에 늘어선 차량 행렬의 모습 등이 빠르게 퍼지고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주유를 서두르라”는 메시지가 분주히 오가고 있다. 한 교민은 “지난 밤에 차에 기름을 넣는 데 두 시간 걸렸다”고 말했다. “기름 넣으려 코스트코(COSTCO)에 갔더니 줄이 너무 길어서 다른 주유소들로 갔다가 기름이 없다고 해서 다시 코스트코에 가서 주유했다”는 것이다. 그는 “다들 침착하게 있으면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며 “지난해 코로나19 때 화장실 휴지 사재기 때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은 지난 11일 밤 차량 외에 기름통까지 챙겨서 주유소에 다녀왔다고 전했다. 미 자동차협회(AAA) 집계를 보면 이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008달러로,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기름 공급을 맡고 있던 미 동남부의 가격 상승이 상대적으로 크다. 조지아주는 일주일 전 갤런당 2.715달러에서 이날 2.951달러로, 노스캐롤라이나주는 2.689달러에서 2.850달러로, 버지니아주는 2.741달러에서 2.871달러로 각각 올랐다.
12일(현지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맥클린의 한 주유소에 품절 안내가 써붙여져 있다. 황준범 기자
몰려드는 수요로 상당수 주유소들이 휘발유 품절 상태다. 실시간 주유소 정보 안내 회사 가스버디는 이날 오후 2시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주유소의 65%가 휘발유 품절이라고 집계했다. 버지니아주는 44%, 조지아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43%, 테네시주 16%, 메릴랜드주 11% 등이다. 이번 사태로 플로리다·조지아·버지니아·노스캐롤라이나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연방 교통부는 트럭을 통한 연료 운송에 관한 규제를 완화했다. 백악관도 전날 관계 기관 담당자들과 휘발유 공급난 대책을 논의했다.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12일 오후 재가동을 시작했다고 밝히면서도, 정상으로 돌아가려면 며칠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은 지난 7일 랜섬웨어 공격을 받아 컴퓨터 시스템이 마비되자 8일 미 남부 멕시코만 인근 지역과 동부를 연결하는 5500마일(약 8850㎞)의 송유관을 폐쇄했다. 하루 250만 배럴의 원료를 운송하는 이 송유관은 동부 지역 석유류 수요의 45%를 책임지고 있다. 이번 해킹의 배후는 ‘다크사이드’(Darkside)라는 조직이라고 미 연방수사국(FBI)는 밝혔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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