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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FA 스페셜] 북한서 걸려온 엄마의 전화 - 자유아시아방송

앵커: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일 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북∙중 국경 봉쇄와 시장 활동의 통제 탓에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여기다 북한 당국이 비사회주의 집중 단속에 나서면서 탈북민들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을 돕기도 쉽지 않은데요.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남한에 정착한 딸에게 북한의 홀어머니가 최근 걸어온 전화 통화 내용을 입수했습니다. 산속에 꼭꼭 숨어 몰래 건 어머니의 전화는 생활고 속에서도 딸을 안심시키려는 모정과 선뜻 나설 수 없는 딸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노정민 기자가 전화 속 어머니와 딸의 사연을 통해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민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과 북한 사회의 모습을 들어봤습니다.

“쌀∙식용유∙조미료값 치솟고, 없어서 못 먹어”

[통화 내용 (최미란 씨)] 여보세요! (OO야) 엄마. 살았어? 다른 일은 없어? 잡혀가진 않았어?...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탈북민 최미란 씨(북한 가족의 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는 최근(6월 7일), 북한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북한 당국의 단속을 피해 브로커와 함께 높은 산꼭대기까지 올라가 닿은 연락이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최 씨의 마음은 미어졌습니다. 요즘 북한 생활이 매우 힘든 것을 알고 있다며 쌀값과 기름값 등을 물어보니 천정부지로 치솟았다는 답만 돌아옵니다. 조미료는 가격이 비쌀 뿐 아니라 없어서 못 사 먹을 정도가 됐습니다.

[통화 내용 (어머니)] 기름은 한 병(1kg)에 (중국 돈으로) 250위안. 맛내기는 400위안. 못 먹는다. 못 먹어.

일 년 넘게 봉쇄된 북∙중 국경과 시장 활동에 대한 통제가 이어지면서 일반 주민들의 현금 수입은 급감하고 생활 물가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랐다는 것이 어머니의 설명이었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적발될 위험을 무릅쓰고 브로커를 통해 한국에 있는 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반년 만에 연락이 닿은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브로커의 휴대전화 문자로 보낸 편지에는 ‘긴말을 할 수 없다’라고 적었습니다.

‘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라는 마지막 한 줄에는 어머니의 다급함과 딸에 대한 미안함이 그대로 전해집니다.

[최 씨 어머니 편지 (대독)] 정말 보고 싶구나. 엄마다. 앓지 말고 잘 있어라. 긴말을 할 수 없구나. 차에 (치여) 다친 (네) 동생 때문에 어찌할 길 없구나. 잘못하면 죽는다. 그래서 이런 부탁을 한다. 큰엄마 도움을 받아서 (네가) 좀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안녕히. 6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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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있는 딸에게 도움을 요청한 북한의 어머니. ‘긴말은 할 수 없고, 도와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편지에는 북한에서 생활고가 그대로 느껴진다. / 사진 제공 – 최미란 씨 (가명)

돕고 싶어도 쉽게 도울 수 없는 상황들

최 씨 역시 그동안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았습니다. 당국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중간 브로커들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고,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송금 수수료 때문에 주저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와 어렵게 연락이 닿은 최 씨도 이런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통화내용 (최미란 씨)] 거기 힘들다는 거 알아요. 돈을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고, 대수(중간수수료)가 너무 높아져서...

어머니 곁에 있던 중간 브로커도 북∙중 국경 지역에 검열과 단속이 크게 강화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브로커는 자신이 싼 수수료로 꼭 돈을 전해줄 수 있다며 최 씨를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통화내용 (중간 브로커)] 검열이 엄청 붙었어. 그 속에서도 다 한다. 언니야, 우리처럼 처리할 수 있는 사람에게 붙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 번호로 부치면 돈이 할머니 손에 들어간다는 소리다.

그동안 믿고 거래하던 브로커들은 대부분 당국의 단속으로 활동을 중단했고, 믿을 만한 거래처는 송금 수수료를 50%나 떼다 보니 이번에 어머니와 통화를 하게 해준 이 브로커가 반가웠지만, 전화를 끊은 최 씨는 서둘러 송금할 준비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자신은 사기꾼이 아니고, 어머니가 돈을 받으면 확인까지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누군지 전혀 알 수 없는 이 브로커가 의심스럽기도 합니다.

지인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할 때마다 ‘항상 조심하라’는 말을 들을 때면 어머니를 돕는 것조차 이렇게 힘든 현실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돈만 떼이는 것은 아닌지, 어머니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되는지 등을 확신할 수 없어 결국, 최 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서 어머니를 도울 방법을 찾아 나섰습니다.

최 씨의 사연이 대부분 탈북민의 상황

북한에 가족이 있는 다른 탈북민들의 상황도 최 씨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돈이 있는 집은 그럭저럭 버틸 수 있지만, 없는 집은 먹는 것조차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북한에 있는 가족에 도움을 주고 싶지만, 연락도, 송금도 쉽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만 커지고 있습니다.

최 씨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끊기 전 마지막으로 ‘돈을 보내주면 무조건 먹을 것만 사 놓고 아프지 말 것과 끝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는 대답 대신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삶의 고단함을 통곡에 가까운 울음으로 쏟아냈습니다.

[통화내용 (어머니)] 알았다. 내가 죽지 않고 이러고 있다,…(울음)

겨우겨우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브로커는 전화를 끊어야 한다고 재촉합니다.

[통화내용 (중간 브로커)] 언니. 이제 그만 (산에서) 내려가야겠다.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 시장 활동에 대한 통제, 비사회주의 현상의 단속을 앞세운 탈북민 가족에 대한 검열 강화 등으로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점점 더 악화하고 있습니다.

단속과 사람들 눈을 피해 산꼭대기에서 어렵게 연결된 최 씨와 어머니의 전화 통화 내용은 오늘날 북한에 가족을 둔 대다수 탈북민이 직면한 공통된 사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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