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질 검찰과 기억력 나쁜 정치인이 서로 얽히고, ‘공작’과 ‘음모’ 이야기로 먹고사는 언론까지 합세하여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런 소동이야 별로 놀랍지 않지만, 이번 일을 통해 휴대전화와 사생활 보호에 대해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휴대전화가 보편화되고 일상과 다양하게 연결되면서, 이제는 의사소통 수단뿐 아니라 개인에 대해 가장 많은 정보를 담는 기계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 권력기관은 조사를 시작하며 피의자의 휴대전화부터 확보한다고 한다. 휴대전화에는 누구와 무슨 연락을 했고 언제 어디에 갔는지, 심지어 무슨 물건을 샀는지까지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휴대전화가 피의자의 결백을 밝히는 증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정치와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조금만 의심스러운 일이 생기면 휴대전화를 내놓으라는 식의 요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동시에 혹시 압수될 상황에 대비하여 휴대전화를 비밀스럽게 관리하는 방법도 점점 진화하는 모양이다.
최근 소위 검찰의 ‘청부 고발 사건’에서도 이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문제의 핵심에 있는 검사 출신 의원은 자신이 보안을 위해 휴대전화를 6개월마다 바꾼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에 문제가 된 문건을 주고받을 때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앱)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앱은 보안성이 뛰어나서 제 3자의 접근이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철저한 암호화로 해킹이 어렵고, 본인이 메시지를 지우면 회사 서버에도 흔적이 남지 않아 범죄에 많이 이용되기도 하는데, 뜻밖에 정치인들도 많이 쓴다고 한다.
이렇게나 조심했다면 어차피 나올 것도 없을 텐데, 이번 논란에서는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하라는 요구도 매일 들린다. 처음에는 문서를 주고받은 이들의 휴대전화를 빨리 압수하라 했었다. 또 관련자 중 한 사람이 국정원장과 만났다는 것이 알려지자 국정원장의 휴대전화도 압수수색을 하라고 한다. 전 법무부 장관은 자기 휴대전화를 공개할 테니 다른 관련자들도 공개하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통한 조사를 당연하게 여기는 이런 접근은 문제가 있다. 개인의 휴대전화를 그 사람의 잘못이나 결백을 밝히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면, 우리는 사실상 감시사회로 들어가게 된다. 의심이 생길 때마다 휴대전화를 열어야 한다면 과거 경찰이 무작위로 검문을 하고 시민의 가방 조사를 하던 상황과 다를 것이 없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공적 영역에 참여할 권리뿐 아니라 공권력으로부터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으로도 확립된다. 그런데 휴대전화가 가진 여러 기능을 사생활과 공적 생활을 넘나들며 사용하는 바람에 이 두 권리와 그에 따르는 책임의 문제를 다루기가 복잡해졌다. 이 복잡한 문제를 섬세하게 풀지 않고 여차하면 압수해서 해결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큰 부담이 된다.
공직자가 추적을 피하기 위한 앱까지 써 가며 업무 관련 의사소통의 흔적을 체계적으로 지우고, 걸핏하면 상대방 휴대전화를 공개하라고 겁박하는 세상은 위험하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개인 휴대전화를 열라고 할 것이 아니라,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개인 기기보다 녹음되고 열람이 가능한 공적 기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 낫다. 혹 중요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하는 손해가 있더라도, 심각한 범죄나 임박한 테러와 같은 비상 상황이 아니면 휴대전화 압수수색을 자제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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