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성북구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에 설치된 SOS 생명의전화기. 한강 교량 19곳과 춘천 소양1교에 총 75대가 설치돼 있다. 장소가 그렇다 보니 대부분 '위기 전화'다. 하단 생명의전화 버튼은 전화하고 싶은 당사자가, 상단 119 버튼은 위급한 이를 발견한 신고자가 사용하면 된다./사진=남형도 기자 |
![]() |
정적을 찢는 전화벨 소리에 심장이 덜컹 울렸다. 모두 숨죽인 새벽 두 시, 한강 교량 어딘가에서 걸려왔을 전화. 생사(生死)의 경계에서 어렵사리 든다는 그 수화기의 무게. 허희라 상담원(51)이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 "네, 생명의 전화입니다." 모니터엔 발신지가 떴다. 한남대교 하류였다.
컴컴한 밤, 아직은 바람이 차가울 새벽, 휑한 그곳에 홀로 버티고 서 있을 누군가를 상상했다. 허 상담원과 멀찍이 떨어진 채 자세를 고쳐 앉은 뒤 귀를 기울였다. 상담 내용은 비밀이라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허 상담원은 이렇게 말하며 상대방을 다독였다.
"많이 힘드셨나 봐요. 더 우셔도 돼요. 우시고 싶으면 편히 우셔도 돼요." 무심히 쌓아뒀던 심연의 힘듦마저 뒤흔들어 감싸 안는 말. 칠흑 같은 어둠을 뚫은 빛 같은 그 한 마디에, 나까지 괜스레 울컥해왔다.
![]() |
밤을 잊은 채 불을 밝힌 한국생명의전화 사무실. 여담이지만 한국생명의전화는 국내 최초의 전화상담기관이기도 하다. 그동안 상담한 건수만 109만여건에 달한다. 이중 SOS생명의 전화는 총 7483건이 걸려왔다./사진=남형도 기자 |
지나가다 우연히 본 이도 있겠다. 서울 한강 교량 19개에 설치된 총 75대의 초록빛 전화기. 거기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다. '지금 힘드신가요?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막막하고 컴컴한 한강을 바라보며 전화기를 들었을 때 언제고 받아줄 이들, 그게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들이었다.
이곳 전화 상담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핸드폰으로 거는 전화다. 1588-9191로 걸면 일상 고민, 힘든 자살 문제까지 언제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게 앞서 언급한 한강 교량 전화기로 거는 SOS 생명의전화다.
귀한 생(生)을 저버릴까 싶어 오매불망 전화기 앞을 지키는 이들의 시간은 어떤 걸까. 그게 궁금해 SOS 생명의전화 상담원 곁에 머물러봤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함께했다. 상담 내용은 공개할 수 없어 일부 각색하거나 고쳤다.
한강 교량서 걸려오니… 90%가 '위기 전화'![]() |
SOS생명의전화 상담실. 전화가 오면, 어느 한강 교량에서 왔는지 위치도 함께 뜬다./사진=남형도 기자 |
마포대교, 잠실대교, 성수대교, 가양대교, 서강대교. 상담실 벽면엔 낯익은 이름이 나열된 지도가 눈에 띄었다. SOS 생명의전화가 설치된 한강 교량 안내도였다. 교량 하나에 전화기가 두 대, 어디서 걸려왔는지 화면에 뜬단다. 지도 아래엔 컴퓨터가 있었고, 그 오른편엔 전화기가 있었다.
하룻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평균 두 통 남짓(3월 기준). 죽음의 문턱까지 간 이들에게 걸려오는 거라, 한 통 한 통이 절박하고 간절하다. 상대방이 위험하다고 판단 되면, 응급 벨을 눌러 신고를 요청한다. 허 상담원은 "한강 교량서 직접 걸려오는 거라서, 90% 이상이 위기 전화"라고 했다.
![]() |
상담원이 전화하며 119, 경찰 신고가 필요한 경우엔 안에서 벨을 누른다. 그러면 바깥에서 H1 코드가 뜬다. 신고해달란 신호다./사진=남형도 기자 |
![]() |
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
"죽겠다는 분들이 한풀이하듯 말할 것 같죠?" 허 상담원이 그리 물어왔다. 아니란 뜻이었다. 끝을 생각한 이들이라 오히려 구구절절 말하지 않는단다. 위기 전화에 신고하면 출동하는 시간이 5분 정도. 그 안에 전화를 끊지 않게, 위로하고 공감하고 마음을 풀어준단다.
전화를 받으면 엉엉 우는 이들이 많단다. 그럴 땐 "얼마나 힘드셨어요"하며 실컷 울라고 한다. 그러면 핏덩어리를 토해내듯, 오래오래 켜켜이 쌓아뒀던 설움을 터트리며 목놓아 운다. 편견 없이 온전히 들어줄 이 하나 없어 여기까지 온 이들. 세상살이 얼마나 힘들었냐고, 잘못된 삶이 아니라고, 당신도 소중하다고.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그 짧은 시간에 온 마음을 다해 그리 전달한단다.
![]() |
한강대교에 설치돼 있는 SOS생명의전화./사진=뉴스1 |
그렇다고 감정이입을 너무 심하게 해도 안 된다. 같이 푹 빠지면 상대방을 꺼내줄 수 없어서다. 때론 무게감에 따라, 죽고 싶다고 할 때 "아우 왜요"하며 환기를 시키기도 한다. 허 상담원은 "어둠으로 가득한 공간에 빛을 넣어주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작은 빛으로도 컴컴한 어둠을 밝힐 수 있으니.
4시간 만에 온 전화, 그는 울고 있었다![]() |
전화가 올 때가 됐는데, 허 상담원이 그리 말한 뒤 실제 전화벨이 울렸다. 그는 준비된 듯 순식간에 전화를 받았다./사진=남형도 기자 |
발신지는 한남대교. 전화 건 이와의 통화가 시작됐다. 허 상담원이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상대방은 우는 듯했다. 그런 그에게 "무슨 일 있으셨느냐"고, "편히 우셔도 된다"고, "힘들 때 전화 잘하셨다"고 했다. 추워서 이제 들어가겠단 얘기가 이어지는 듯했다. 집이 어디냐, 가깝냐는 물음이 더 이어진 뒤 1차 전화가 끝났다.
허 상담원은 박 상담원과 대화했다. 젊은 여성이고, 술에 취한 것 같다고 했다. 말을 이어가려 했으나 추워서 집에 간다며 끊겠다고 했단다. "전화 받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고.
그리 얘길 나누고 있는데, 3분 뒤 2차 전화가 또 걸려왔다. 허 상담원이 총알처럼 뛰어가 수화기를 들었다. 얼추 집에 데려다주겠단 통화가 이어졌다. 그런데 무언가 불안한 대화가 들리더니, 그가 "여보세요?"만 반복해서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일까. 심장이 '쿵쿵' 거리며 뛰었다. 그대로 전화가 끊겼다. 긴급상황이었다.
그 사이 박 상담원은 이미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술에 취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또 다른 위험 사례는 전화가 걸려온 뒤 아무 말 없이 끊겼다가, 다시 걸려온 경우다. 그럴 땐 바로 신고한다. "죽을까 말까, 망설이다 끊은 거여서"라고 박 상담원이 설명했다.
당신이 걱정되어, 백지장이 돼 기도한 이가 있었다![]() |
불안하게 전화가 끊겨 걱정된다던 허 상담원(오른쪽)과 그를 침착하게 안심시키던 박 상담원(왼쪽). 누군가가 진심으로 살아냈으면 좋겠다고, 그 마음이 이랬다./사진=남형도 기자 |
경험이 더 많은 박 상담원이 침착하게 그를 달랬다. "아마 순찰하다 발견했을 거야.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있으니까 안전해. 애썼어. 고생했어"라며. 그러나 허 상담원은 너무 애매하다며, 마음을 쉬이 달래지 못했다.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 몇 시간 같은 20분이 지났다. 어쩌면 살고 싶어 전화했을, 사연도 얼굴도 잘 모르는 누군가의 생사는 어찌 됐을까. 그 상념이 머릿속에 찰싹 달라붙어 떨칠 수 없었다. 흐르는 1초마다 무거운 공기가 오갔다. 새벽 2시 30분쯤, 박 상담원이 마침내 119에 전화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여쭤보려고 전화했습니다. 네네. 감사합니다."
"경찰에 인계됐대." 그 한 마디에 모두 탄성을 질렀다. 허 상담원은 "어우 정말"하며 그제야 웃음을 보였다. 아무 말 없이도 같은 마음이었다. 불안한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았단 것, 누군가 이 밤을 살아냈단 것. 그러니 평범하게 숨 쉬는 것도 사실은 이토록 기쁜 거였다.
그리고 허 상담원의 뒤늦은 고백. "아까 화장실 가서 기도했어요. 아무 일 없게 해달라고요."
목소리로 만난 당신이라도 꼭 살았으면 해서 이토록 걱정한 이가 있다고. 그러니 벼랑 끝에선 누구라도 혼자는 아닐 거라고. 불을 밝힌 파수꾼이 여기 있지 않냐고. 그 작은 온기로나마 버티고 버티어, 부디 살아달라고.
그들도 '유족'이었다![]() |
허 상담원이 그림 치료를 하며 그린 그림. 유가족 다섯 명이 그린 그림과 작성한 글을 엮어 '그리는 밤'이란 책도 냈다./사진=남형도 기자 |
두 상담원도 '유족'이라고 했다. 어느 날 갑작스레 가족을 잃었다. 숨길 이유는 전혀 없으나, 상처를 드러내긴 조심스러우니 사연은 아끼려 한다. 그저 그리되었다. 허 상담원도 삶을 등지고픈 날들이 있었다.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밝은 척, 씩씩한 척 견디는 성격도 우울함을 이기기 어려웠다.
1년은 멍했고, 3년까지 그랬고, 4년 정도 되니 괜찮아졌다.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삶의 관점이 달라졌다. 다시 바라보게 됐다. 쫓고 있었던 건 대체 뭐였을까, 내려놓게 됐다. 욕심도 집착도. 고통스러웠던 시간이 다 지나가고 평온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불행한 일만 있는 게 아녔다. 선물처럼 좋은 시간도 찾아왔다. 삶이 늘 그렇듯이.
![]() |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것, 그건 삶의 관점이 전부 달라지는 거라고 했다. 소소한 음식 하나에도 웃을 수 있는 것, 행복은 그리 거창한 게 아니라고 허 상담원과 공감하며 대화를 나눴다. 사진은 파김치를 곁들인 짜장라면./사진=남형도 기자 |
그런 그들이라 한강 교량서 전화 건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번은 "도박의 끝이 여기"라며 전화 온 아버지가 있었다. 5살 아들이 있다고 했다. 실수하고 힘드시겠지만, 돈을 잃었다고 전부 잃은 건 아니라고, 회복할 수 있을 거라 위로한 뒤 그의 아들 얘길 했다. "아들이 아빠까지 잃으면 어떡하겠어요." 남겨진 이의 아픔을 알기에, 그리 말했던 게다.
얘길 들으며 끄덕이던 아버지는 "주위 사람이 쳐다봐서 창피하다"고 했다. 좋은 거였다.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으니.
살아난 이들이, 또 살리고 있었다![]() |
새벽이 4시 40분쯤, 이젠 더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절로 들었다./사진=남형도 기자 |
이를 위해 한국생명의전화에선 '유가족 모임'을 꾸렸다. 아픔을 아는 이들이 서로를 잘 안다. 게다가 유가족이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은 8~9배까지 높다. 그러니 절실히 필요한 거다.
박 상담원도 아들을 잃고 유가족이 된 뒤 처음엔 바닥을 쳤다. 상담하면서도 '내가 왜 이걸 하나, 누굴 위해 하나'하는 자괴감이 컸단다. 얘기를 반복하고, 엄청 울고, 그리 반복하는 시간이 흘렀다. 그런 뒤 유가족 모임의 구심점이 됐다. 전국을 찾아다니며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다. 허 상담원도 박 상담원을 처음 만났을 때 무려 2시간을 엉엉 울며 얘기했단다.
그러니 유가족 모임에 나오라 한다. 박 상담원은 이리 설득했다. "상실과 아픔 하나로만 만나는 거잖아요. 유가족들이 깊은 우울증에 빠져 처음엔 안 나오려 합니다. 일단 나오라고 합니다. 머리를 며칠 안 감아서 떡이 져도 좋고, 밥을 안 먹어 속에서 냄새가 나도 좋고, 너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도 좋다고요. 머리에 핀을 꽂고 색동저고리를 입고 춤을 춰도 이상한 게 아니라고요. 가족을 잃었는데 그게 대수겠어요. 그럼 용기를 내어서 나옵니다. 꼭 안아줍니다. 엉엉 울지요."
그리 살아난 유가족들은 상담원 교육을 받았다. 우선은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삶을 등지려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하다. 살아난 이들이 또 사람을 살리는 게다.
살려낸 아들이 '명절'에 옵니다![]() |
/사진=한국생명의전화 |
엄마를 잃은 형제가 있었다. 동생은 형이 불안하다며 데리고 왔다. 혼자 두기 힘들어 2~3일을 동생 집에서 지내기도 했다. 박 상담원과 상담했고, 지금은 봉사할 만큼 좋아졌다. 신앙생활을 하며 만난 이와 결혼도 했다. 명절 저녁에 얼굴을 보고 싶다고 찾아오기도 한다. 박 상담원은 "아들이고 며느리 같다"며 "부부가 아기를 낳았을 땐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 다 극복이 됐단다, 아들을 잃은 슬픔도.
허 상담원이 대화한 이들도 힘들어했다. 어느 날 청년이 전화와선 "하지 말아야 할 걸 했다"고 토로했다. 도박한 거였다. 얼마를 잃었냐 물으니 수백만원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허 상담원이 "이제 안 하면 되죠. 수천만원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괜찮아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그렇지요? 이제 안 하면 되겠죠?"하고 감사하다며 끊었다.
![]() |
새벽에 컵라면을 하나씩 먹어야 한다고. 상담원님이 주신 떡을 먹느라 라면을 먹지 못했다./사진=남형도 기자 |
그는 이 일의 가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때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 자괴감이 있었어요. 그래도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고쳐야 하는 거지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인 겁니다."
아침이 오니 기뻤다![]() |
날이 밝으니 이리 좋았다. 화장실에서 바라본 아침 풍경./사진=남형도 기자 |
오랜만에 밤을 지새우니 고단하고 힘들었다. 허기도 몰려왔다. 박 상담원이 준 떡을 먹으며 빈속을 달랬다. 라면도 놓여 있었으나 졸릴까 싶어 먹지 않았다.
허 상담원과 죽음과 삶을 얘기하며 긴 새벽을 버텼다. 서로 나이를 합치면 90년인, 우리가 살아본 뒤 할 수 있었던 얘긴 이랬다. 미친 듯이 힘든 게 계속되진 않고 어느새 지나간다고, 맨날 밝은 날만 있으면 재밌겠냐고, 겨울이 계속되다 봄이 오면 또 얼마나 좋냐고, 죽음밖에 길이 없다는 생각은 시야가 좁아져 그런 거라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 선택권은 내게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리고 허 상담원은 이렇게 말했다. "실수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아요.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우린 살아 있으니까요." 게다가 그의 말이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이랬다. "정말 그래요. 제가 해봤거든요."
대화가 길어져 몇 시간 만에 화장실에 갔을 때, 어느새 어둠을 밀어내고 해가 떠 있었다. 차마 몰랐다. 아침이 오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게 이리 좋은 것인지. 그리고 그 뒤로 더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 |
마음이 힘든 유가족들을 위해 제작된 '오늘의 마음'./일러스트=정옥경, 한국생명의전화 제공 |
20대들이 전화를 많이 한다고 했다. 대체로 이런 이들이 많단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고, 좀 착하고, 뭐랄까 타인은 잘 이해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는. 남을 공격하진 못하면서 스스로 못나서 그런 거라고 자책한단다.
때론 자해까지 한다고 했다. 박 상담원은 전화할 때 비유를 많이 하는데, 그런 이들에겐 이렇게 얘기한다고 했다. 전화 건 이를 '힘듦이'라 하겠다.
"길을 가다가 실수로 상대방 발을 밟았을 때, 뭐라고 하나요?" (상담원님)
"아우, 미안해요. 다친 데 없어요? 이렇게 말해요." (힘듦이)
"그리고 혹여나 다치게 했으면 연고나 밴드를 붙여주겠지요?" (상담원님)
"네, 그럼요. 맞아요." (힘듦이)
"남에겐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도 배려하고 존중하고 그렇게 하잖아요. 그런데 왜 스스로에겐 왜 그리 엄격하게 대하고 상처를 주고 다치게 해요. 미안하단 의미로,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손목에 가장 비싼 선물을 해주세요. 멋진 팔찌도 채워주고, 명품 시계도 해주고요. 참 애썼다고, 고생 많았다고 해줘요. 내가 못한 게 하나도 없어요. 최선을 다해 견디느라 애썼잖아요."(상담원님)
그리 곱게 말하면, 수화기 너머로 엉엉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기사 및 더 읽기 ( 새벽 2시, '한강다리'에서 전화가 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 머니투데이 )https://ift.tt/3s6LlE4
Bagikan Berita Ini
0 Response to "새벽 2시, '한강다리'에서 전화가 왔다[남기자의 체헐리즘] - 머니투데이"
Post a Comment